안시성 앞 토산을 빼앗기자 철수하는 당태종 (6부)

크게작게

성헌식 컬럼니스트 2019-08-01

 

5. 안시성 앞에 쌓은 토산

 

만일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당태종이 주필산에서 일격에 고구려 15만 대군을 박살낼 정도였다면 아마 이어지는 안시성 전투에서도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백일사> 기록대로라면 이미 주필산에서 기선을 제압당해 궁지에 몰린 당 태종이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다. 과연 어떠했는지 그 기록 속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다. 

 

1) <삼국사기>의 안시성 전투기록

당나라 군대는 드디어 안시성 앞으로 진군해 이세적이 안시성을 공격했다. 당태종의 깃발을 본 안시성 사람들이 성에 올라 북을 두드리고 함성을 지르며 조롱하자 당태종이 진노했다. 그러자 장수 이세적이 성 함락 즉시 안시성 남자들을 모두 구덩이에 묻어 버리겠다고 협박하니 안시성 사람들이 더욱 굳게 수비에 전념하니 이세적이 오랫동안 공격했으나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자 항복한 고연수 등이 당태종에게 저희들은 이미 대국에 몸을 맡겼으니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는 어서 빨리 큰 공적을 이루시어 저희들이 처자식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안시성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에 쉽게 함락시킬 수 없을 겁니다. 저희들은 15만의 병력을 가지고도 황제의 깃발을 보자마자 사기가 꺾여 바로 허물어졌으며, 백성들의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오골성의 욕살은 늙어서 수비가 견고하지 못하니, 그곳으로 군사를 옮겨 공격한다면 아침에 도착해 저녁에 승리할 것이고, 그 나머지 길에서 맞닥뜨릴 작은 성들은 황제의 위풍만 봐도 반드시 허물어질 겁니다. 이후 그곳의 무기와 군량을 거두어 북을 치며 진군하면 고구려는 틀림없이 평양을 지켜내지 못할 겁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여러 신하들이 나서면서 장량의 병사들이 비사성에 있으니, 그를 부르면 이틀이면 올 수 있습니다. 고구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틈을 타 힘을 합해 오골성을 빼앗고, 압록강을 건너 곧바로 평양을 빼앗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건의하니 당태종이 이에 따르려고 하자 장손무기가 홀로 나서면서 천자의 친정은 제장들이 온 경우와는 달리 모험을 하며 요행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지금 건안성과 신성의 병력도 10만이나 되는데, 우리가 만약 오골성으로 간다면 적들이 반드시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먼저 안시성을 점령하고 건안성을 취한 후에 군사를 멀리까지 진군시키는 것이 만전을 기할 계책입니다.”라고 아뢰니 당 태종은 이전 계획을 중지했다고 한다. 아직까지 당 태종의 최종목표는 고구려 평양성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모든 군사들이 서둘러 안시성을 공격했다. 당 태종은 안시성에서 들리는 닭과 돼지 소리를 듣고는 장수 이세적에게 성을 포위한 지 오래여서 성 안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었는데, 지금 닭과 돼지 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군사들을 잘 먹인 후 야습하려는 것이다. 병사를 단속해 이에 대비하라.”고 명령했다.

 

당 태종의 예측대로 이날 밤 수백 명의 고구리 군사들이 성에서 줄을 타고 내려왔다.보고를 받은 당 태종이 직접 성 밑에 와서 병사들을 독려해 재빨리 공격하니 고구리 군사 수십 명이 죽고 나머지는 도주했다. 강하왕 이도종이 군사들을 독려해 안시성 동남쪽 귀퉁이에 토산을 쌓아 차츰 접근해오자고구리는 성을 더 높이 쌓아 이를 막아냈다. 군사들이 교대로 싸우는데 하루에도 6~7회 서로 교전이 벌어졌다. 당나라에서 충차와 투석기로 성루와 담을 파괴하면 성 안에서는 그때마다 목책을 세워 부서진 곳을 막았다. 이도종이 발을 다치자 황제가 직접 침을 놓아 주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60일 동안 밤낮을 쉬지 않고 연인원 50만 명이 동원되어 토산을 완성시켰다. 토산의 꼭대기가 안시성보다 두어 길 높았기 때문에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도종은 부복애에게 병사들을 거느리고 토산 꼭대기에 주둔하며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던 중 토산이 허물어지며 안시성을 덮치는 바람에 성의 일부가 무너졌는데,그 때 부복애는 개인적인 용무로 토산을 떠나 있었다.

 

고구리 군사 수백 명이 성의 허물어진 틈으로 나와 싸워서 토산을 탈취해 그곳에 참호를 파고 적의 역공에 대비했다. 대노한 황제가 부복애의 목을 잘라 효시하고 장수들에게 성을 공격하라 명령했으나 사흘이 지나도 이길 수 없었다. 이도종이 맨발로 황제의 깃발 아래로 가 죄를 청하자 황제는 너의 죄는 죽어 마땅하지만, 개모성과 요동성을 점령한 공로가 있으므로 특별히 용서한다.”고 말했다.

 

▲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 당나라가 쌓은 토산     ©편집부

 

2) <태백일사>에 기록된 안시성 전투

<태백일사><삼국사기>와 가장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에서는 항복한 고연수 등이 당태종에게 함락이 불가능한 안시성 대신에 다른 성을 공격하자고 건의한 반면, <태백일사>에서는 고연수 등이 여전히 고구려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삼국사기>에는 비사성에 있던 장량과의 합동작전을 당태종이 취소했다고 기록한 반면에,

 

<태백일사>당태종이 비사성에 있는 장량의 병력을 불렀으나 먼 길을 돌아오느라 시간을 놓쳐 이루어지지 못했다. 장량은 병력을 이동해 오골성을 습격하려다가 도리어 고구리 군사들에게 패했다. (중략) 이세적 만이 홀로 고구리가 나라를 기울여 안시를 구하므로 안시를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니 직접 평양을 치자.’ 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장손무기의 말 중에 지금 건안성과 신성에 있는 적군도 수십만이며 고연수가 이끄는 말갈 역시 수십만이다.만약 국내성 병력이 오골성을 돌아 낙랑의 모든 길을 차단한다면, 저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것이며 우리는 곧 포위당할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적을 얕잡아보면 후회막급이 될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어 항복했다는 고연수 등이 여전히 고구리에서 활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연수가 항복했다는 춘추필법의 기록 역시 조작이었던 것이다.  

 

▲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안시성 앞에서 수십만 당나라 군대를 지휘하던 당태종이 갑자기 철수한 이유는? © 


 
6. 안시성에서 철수하는 당태종

 

연인원 50만 명을 동원해 주야로 60일간 쌓았다는 토산을 싱겁게 빼앗기자 <삼국사기>황제는 요동지방이 일찍 추워져 풀이 마르고 물이 얼기 때문에 군사와 말을 오래 머무르게 할 수 없으며, 또한 군량이 떨어지려하므로 안시성에서의 철수를 명했다.”는 이상한 기록이 느닷없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태종이 철수명령을 내린 918일은 양력으로는 10월 말로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으로 물이 얼려면 아직 시기상조이다. 얼마 전 이도종과 고연수가 평양성으로의 직접 진군을 건의했을 때만 해도, 장손무기는 천자의 안전한 친정을 위해서는 안시성과 건안성을 차례로 함락시킨 후 평양성으로 진군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그 때는 전혀 추위 걱정을 안 하더니 왜 지금은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도 전에 추위 때문에 철수해야한다는 걸까?

 

또 다른 이유가 군량 부족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5월 중순에 요동성을 함락시키고는 50만 섬의 양곡을 얻었고, 623일 고연수 등이 항복하면서 노획한 소 5만 두와 말 5만 필이 있었음에도 군량이 떨어져 철수했다는 기록은 뭔가 진실을 숨기려는 위장기록이다. 게다가 철수과정도 가관이다. “황제는 철수에 앞서 먼저 요주와 개주의 주민을 선발해 요수를 건너가게 하고, 군사를 동원해 안시성 밑에서 시위를 하고 돌아갔다.

 

성 안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다. 성주가 절을 하며 작별을 고하자 황제는 그가 잘 싸워 성을 지켰음을 가상히 여겨 비단 1백 필을 내려주어 임금에 대한 충성을 격려했다.”는 지나가던 소가 웃을 기록이 있다. 이는 당태종 철수의 진짜이유를 가리기 위한 조작문구일 것이다.

 

기사입력 : 2019-08-0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