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으로 전락한 조의선인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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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수 성균관 석존교육원 교수 2019-07-15

. 조의선인(皂衣仙人), 백정(白丁)의 길

 

1. 천손민족의 역사와 맥이 차단되다.

 

경당(扃堂)에서 육례(六禮)를 터득, 삼신일체(三神一體)를 이루었던 조의선인(皂衣仙人)들은 태초 한인(桓仁)1만여 년의 가르침인 본성(本性)을 찾고자 수련하지 않았을까?. 본성은 신성(神性)이다. 오직 율려(律呂)만이 존재했던 천지창조의 시대를 염원했을 것이다. 단군왕검 시기로부터 시작된 수련으로 2,096년을 지켜 왔고 그 혼()과 맥()은 열국의 혼란기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왔다.

 

부도지(符都誌)에 나오는 4대 원소 기()()()()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며 완성으로 나가는 개념이다. 이는 높고 낮음, 잘나고 못남, 귀함과 천함이 없이 모든 것에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그것이 서로 어울러져 조화를 이룰 때 완성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 단군왕검 시대에는 완전 평등을 실현한 국가로서 높고 낮음이나 귀천의 개념이 없는 완전한 평등 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杏村은 이를 염두에 두듯 이 백성이 살아 온 지도 오래되었도다. 세상이 창조된 이래 질서가 잡히고, 또한 더하고 고치고 증명하여 왔다. 나라는 역사와 더불어 존재하며 사람은 정사(政事)와 더불어 갖춰지고 드러나는 것이니, 모두가 자아(自我)에 우선해야 하며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바이다.(斯民之生 厥惟久矣 創世條序 亦加訂證 國與史 竝存 人與政 俱擧 皆自我所先所重者也)라 충고했다.

 

그러나 행촌이 충고한 정사는 갖춰지지 않았고, 자아에 우선되지도 않았다. 여말선초(麗末鮮初) 급박한 정세 틈에서 사대(事大)에 의한 모화사상(慕華思想)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는 고조선의 흔적 지우기를 시작, 역행의 길로 치달았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고대사서(古代史書) 분서(焚書)를 시작으로 고조선의 별자리(星座), 지리지명(地理地名) 이동이 진행되었고, 선인(仙人)들을 백정(白丁)으로 만들어 아예 그 근본을 말살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과 가무(歌舞), 하늘을 경외하고, 한바탕 어우러짐으로 나라와 부족의 안녕을 기구했던 천손민족의 원천, 조제(朝祭)와 팔관회(八關會)를 주도했고 전수해 왔던 특수 신분의 이들 기예자(技藝者)들은 고조선의 영역, 대륙 기반이 사라지면서 천손민족의 역사와 맥이 철저히 차단되었다. 그리고 이를 절단하고자 부심한 자들에 의해 백정(白丁)이라는 이름으로 전락되어 한() 5백년 굴욕적인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우리 민족의 극적인 노래인 창()은 이로 인해 원혼의 한()을 달래는 소리가 그리도 많을 터이다. 굿은 살풀이굿으로 부터 시작이 되어 판소리로 이어진다. 가면놀이와 북소리, "얼씨구" "좋다" 추임새가 이어진다. 이 또한 5백년 핍박과 굴욕을 뛰어 넘고자 하는 처절한 몸짓으로만 보임은 왜인가?.

 

전승된 지식이 노래이다. 유럽 지방으로 떠난 이들 천손들은 무곡(舞曲)인 강강술래를 하며 이를 더욱 승화시켰다. 유럽인들은 천손민족의 노래노엘이라 이름하고, 이브 송에 삽입시켜 또 다른 하늘을 찬양했다.

 

그러나 혈통을 따라 남녘을 찾은 이들은 정체성을 잃었다. 피는 물 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들은 피 보다 더 진한 것이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보금자리를 잃은 이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님을 깨닿는 데 결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영원한 객인의 위치에서 천손의 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온몸으로 절규해야만 했다. 이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요약한다.

 

2. 백정, 기마와 궁술에 능했다.

 

1423108(을묘)백정통칭 결정은 군부를 관장하는 병조의 건의였다.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민정(民丁)揚水尺)을 한데 묶어 관리에 철저를 기했다. 1425(세종 7)에 또 무악(毋岳)산 아래에 모여 살던 새 백정(新白丁)들을 도성 밖으로 쫓아냈다. 밀도살을 했다는 이유를 달았다. 새 백정은 일반 민정과 분리키 위한 용어였을 뿐이다. 병조의 건의에 의한 결정에서 보듯, 민심의 변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 줄타기                                                                                                                                  © 편집부
▲ 창과 칼 춤     © 편집부

 

1436(세종 18) 외구(外寇)의 제어책을 평안도 도절제사에게 보낸 내용 중에, ‘신백정 등은 항상 수렵을 익혔기 때문에, 말도 잘 타고 걸음도 잘 걸으오니 만약에 이 무리를 쓰게 된다면 이른 바, 만이(蠻夷)로서 만이를 치는 격이 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다. 이들은 남녀 모두 기마와 궁술에 능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강인한 체력과 전술 전략 또한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분산 거주케 하여 집단화를 차단했다. 이는 이러한 외적 상황이 빌미가 되어 취약한 왕권에 자칫 치명적인 변란의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논리로 이를 예방, 불식시키고자 사전 작업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풍속에 남자무당을 일러 화랑(花郞)이라고 한다는 말은 다산시문집(3) 중에 화랑이 수묘에 가 빌면 (水廟禱花郞)’이라는 대목과 중종 31(1536) 9재해 고을과 먼 지방의 징병을 면제할 것을 명하다, 재백정(才白丁)에서 재인(才人)은 광대로 배우나 화랑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훈몽자회에 ()’화랑이 격이라고 하고 또 화랑화냥’(花娘)이라 했으니 인식 차이였을까?.

 

현대 국어사전은 재인단골을 재인, 공인(工人), 광대, 창부(倡夫), 화랑 따위로 불리는 사내들과 혼인한 무당이라 하였다. 조의선인과 화랑은 양수척이란 이름에 같이 묻고 싸잡아 부른 이름, 백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이 같은 의구심에는 이들이 기마와 궁술에 능했고, 날쌨으며 특수한 신분계층이라는 사료의 기록들이다. 이는 적과 대치하는 특수 임무자들이 지녀야할 용맹성이요, 군률이다. 상황에 따라 매복과 변장, 변복을 거듭하여 적을 교란시켜야 했으니 탈바꿈에 능해야 했을 터이다. 탈바꿈은 탈을 바꿔 쓰는 광대이며 배우로 변장에 능한 전사들이다. 조의선인이 그러했고, 화랑은 화장을 통해 신분을 감추었다.

 

기사입력 :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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