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의선인의 시원, 경당(扃堂)의 기원과 의의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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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수 성균관 석존교육원교수 2019-02-25

 

 . 조의선인의 시원, 경당(扃堂)의 기원과 의의

 

조의선인의 시원을 알기 위해서는 경당의 기원과 그 의의를 먼저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경당은 高句麗 초기 지방 촌락을 중심으로 평민들의 미혼 자제들을 모아 교육했던 사설 교육기관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또한 유학을 교육하고 군사 양성기관으로 보아온 측면이 보인다. 그러나 한단고기(桓檀古記)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경당은 고조선 초기 국가 주요지역에 소도(蘇塗)를 두고 설립, 계급 구분없이 평민, 귀족 자제가 함께 교육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육예(六藝)를 연마, () ()를 겸전하고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도를 일깨웠음을 알 수 있다.

 

행촌(杏村) 이암(李嵒)이 단군세기(檀君世紀)에 경당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서문에 사학(史學)이 밝지 아니하면 사기(士氣)를 펼 수 없고, 사기를 펼 수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사(政事)와 법령(法令)이 갈라진다(史學不明則士氣不振士氣不振則國本搖矣政法)”라 하여 후세에 경고적 메시지를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행촌의 사상과 이념이 함께 묻어나는 부분이다. 

 

<참고> * 한단고기는 계연수가 이기의 감수를 받아 1911년에 편찬한 역사책으로, 삼국유사 이전의 옛 기록들을 통해 겨레와 나라의 뿌리를 밝히고 있다.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로 되어 있으며 우리 상고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 육예(六藝)는 보통 주례(周禮)에 근거한다. 주나라 때 행하여 졌던 교육과목으로 후대 역대 모든 국가의 덕목이기도 하며 조선의 식자들의 덕목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례의 육례는 고조선의 육례를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 삼신일체는 우주 천리를 크게 깨우친 동방의 한민족은 천지이법의 대도(大道)를 인간역사 속에 적용했다. 즉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의 삼신하나님의 삼신일체의 도를 크게 깨쳐서 하늘의 광명정신을 통치원리에 구현하고자 한 것이다.

 

* 이암(李嵒 1297-1364)의 본관은 고성(固城). 초명은 군해(君侅). 자는 고운(古雲), 호는 행촌(杏村). 판밀직사사 감찰대부 세자원빈(判密直司事監察大夫世子元賓)인 존비(尊庇)의 손자이며, 철원군 우(鐵原君瑀)의 아들이다. 1313(충선왕 5)에 문과에 급제, 이후 지신사(知申事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정당문학(政堂文學첨의평리(僉議評理) 등을 역임하였다.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에 올랐다. 공민왕 초 철원군(鐵原君)에 봉해졌으나 사직하고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갔다가, 다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에 제수되었다.

 

1359(공민왕 8)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문하시중으로서 서북면도원수가 되었다. 1361년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추성수의동덕찬화익조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翊祚功臣)이라는 호가 하사되었다. 글씨에 뛰어나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렸으며, 특히 예서와 초서에 능했다. 필법은 조맹부(趙孟頫)와 대적할 만하며, 지금도 문수원장경비(文殊院藏經碑)에 글씨가 남아 있다. 그림으로는 묵죽에 뛰어났다. 우왕 때 충정왕(忠定王)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단군세기는 태백진훈(太白眞訓), 농상집요(農桑集要)와 함께 그가 남긴 행촌삼서(杏村三書)’의 하나로 꼽힌다. ()에 보면 1363(공민왕 12) 103일 강화도 해운당(海雲堂)에서 저술된 것으로 되어 있다. 고려시대 진역유기(震域遺記)를 저술한 이명(李茗), 북부여기(北夫餘記)의 저자 범장(范樟)과 더불어 천보산(天寶山) 태소암(太素庵)에서 소전거사(素佺居士)로 부터 진기한 고서(古書)를 전수받아 이 책을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1세 단군(서기전 2333)부터 47세단군(서기전 295)까지의 2,096년간의 실록을 기록하고 있으며, 북부여 해모수(解慕漱)의 건국(서기전 239) 사실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1. 춘추필법에 의한 중국 기록

 

경당의 기원을 高句麗로 보는 이유는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高句麗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당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데 따른 결과로 보인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俗愛書籍 至於衡門廝養之家 各於街衢造大屋 謂之扃堂 子弟未婚之前 晝夜於此讀書習射라 했다. 풀이하면, “서적을 사랑하는 풍속이 있다. 가난해서 천한 일에 종사하는 집에서까지 각기 네거리에 큰 집을 지어 이를 경당이라고 부른다. 혼인하기 전의 자제들이 밤낮으로 그 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또는 사격술을 습득한다라 하고,

人喜學 至窮里廝家 亦相矜勉 衢側悉構嚴屋 號扃堂 子弟未婚者曹處 誦經習射사람들이 학문을 좋아해 가난해서 천한 일에 종사하는 집에서까지 서로 절약해 길가에 모두 엄옥을 지어 그것을 경당이라고 부른다. 미혼의 자제들이 그 곳에 모여 경전을 암송하고 사격술을 습득한다라 했다.

 

두 사서의 내용으로 만 보면 경당은 지방의 촌락에 설치했던 평민층 미혼 자제를 위해 만들어진 교육 기관으로 짐작되며, 이 곳에서는 경전과 사격술을 가르쳤다고 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전형적인 수법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면 경당이 최초로 설치된 것이 언제인지를 태백일사(太白逸史)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번한세가(番韓世家) 상편의 경당 관련 기록을 살펴보자갑술년(BC 2267)에 태자 부루(扶婁)는 명을 받들어 도산(塗山)으로 가는 길에 반달동안 낭야(琅耶)에 머무르며 민정을 청문(聽聞)했다. 우순(虞舜)도 역시 사악(四岳: 순임금 때 제후들을 통솔하던 우두머리들)을 인솔하고 치수(治水)의 여러 일들을 보고하였다. 번한(番韓)은 태자의 명을 받고 나라에 크게 경당(扃堂)을 크게 일으키고 아울러 삼신(三神)을 태산(泰山)에서 제사지내도록 하였다. 이로부터 삼신을 받드는 옛 풍속은 회()와 대()지방의 사이에서 크게 행해지게 되었다.”

 

위 기록으로 보면 경당은 이미 단군왕검 시대에 설치되었으며, 중화족이 주장하는 평민의 자제말은 없다. 귀천(貴賤)이 따로 없었다. 이는 당서(唐書)에서 지적한 가난해서 천한 일에 종사하는 집에서까지라는 명구를 넣어 은연 중 고구려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 한단고기 원문                                                               © 편집부

 

 단군세기(檀君世紀)에는 11세 도해(道奚) 단군 경인 원년(BC 1891) 단군께서 오가(五加)에게 명하여 열 두 명산(名山)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을 택하여 국선소도(國仙蘇塗)를 설치하였다 (庚寅元年 帝命五加擇十二名山之最勝處設國仙蘇塗)라 했으며, 태백일사(太白逸史)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記)에는 소도의 옆에는 반드시 경당(扃堂)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讀書), 활을 쏘며(習射), 말을 타고(馳馬), 예절을 익히고(禮節), 노래와 음악을 배우며(歌樂), 격투기와 검술(拳搏) 등의 여섯 가지 기예(六藝)를 말한다.”하여 단순 교육이 아니었음이 확인된다. 또한 사학(私學)이 아닌 나라가 세운 국공립(國公立) 교육기관임을 알 수 있다.

 

경당(扃堂)에서 빗장 경으로만 해설하면 풀리지 않는다. ‘밝은 경이다. 밝게 살피는 모양을 扃扃이라 한다. 기예(六藝)의 현장은 밝은 수련의 도장으로 산상 수훈의 터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내 마음도 밝기만 하네(我心扃扃)라는 대목이 보인다. 

 

< 참고 >* 중국의 역사서술 방식을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 부른다. 춘추시대 역사서로 춘추의 저자는 공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말사전에는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만 입각해서 엄정하고 비판적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설은 실제와는 다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응징이나 징벌로 표현하며, 자기 생각에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남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으로 평가한다. 춘추필법에 따라 역사를 쓰는 사람들은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전개한다. 이러한 필법이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필법일까? 

 

* 태백일사는 단군세기를 전한 이암의 현손이자 조선 중기 연산군시대의 학자인 일십당 주인(一十堂 主人) 이맥(李陌,1455~1528)이 편찬한 것으로 태백일사를 소중하게 간직하여 후세에 전한 분이 바로 이맥의 후손인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였다. 이기 선생은 한말의 애국지사로 이름난 분이었고, 한단고기를 통해 우리 나라 상고사를 밝혀 준 숨은 민족사가이다.  

 

* 부루(扶婁) 2세 단군 재위 58/ 즉위년 BC 2240. 임금님께서는 어질고 덕이 높으시고 도량이 넓으시어 국가의 살림이 크게 넉넉하였다. 백성과 더불어 산업을 일으키니 한 사람들도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이 없었다.  

 

* 삼신이란 한인(桓因한웅(桓雄한검(桓儉) 삼위(三位)로 각기 낳고(造化), 기르고(敎化), 다스리는(治化) 자리를 말한다. 이 세 자리는 유일무이한 하느님 한배검의 세 작용이므로 삼위는 일체(一體). 또한, ··에 대하여서는 무상(無上무시(無始무선(無先)의 절대적 자리임을 들어 삼신일체(三神一體)라 한다. 

 

* 태산(泰山)은 중국 산동성(山東省) 태안(泰安)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맥의 주봉이다, 오악(五岳)의 하나인 동악(東岳)이며, 높이는 1,524미터이다. 

 

* 회()() 지방이란 현 황하지역의 태안(泰安)에 있는 태산(太山)과 회수(淮水)지역.

기사입력 : 2019-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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